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세자 입학도/등장인물 (문단 편집) ==== 석이태 ==== ||<-2> {{{#010101,#010101 '''{{{+1 석이태}}}'''}}}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왕세자입학도_장호.png|width=100%]]}}} || || '''자/호''' ||장호|| || '''방사''' ||동재 진사 3방(진사)|| 성균관 동재의 유생으로 자/호는 장호. 동재의 진사간에 거재하고 있으며, 능금과 우람보다 먼저 입재한 선진이다. 동태눈이 특징.[* 이 동태눈 때문에 독자들에게서 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철마다 선진들을 따라 산행을 다닌 덕에 북악산의 지리를 거의 꿰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생들의 가을 모꼬지를 인솔했고, 효동이 미타와 재회하고 싶어 그녀가 있다던 명경암에 대해 묻자 나중에 사람을 부려 알아봐 준다. 세 돌이 된 아들이 있어서 어린 효동을 굉장히 예뻐한다. 경휼과 차방을 항상 곁에 데리고 다닌다. 그러나 흑함 편에서 좋지 않은 본색을 드러내는데, 공부 뿐만 아니라 처세도 중요하다 역설하며 운을 떼더니 성균관을 위한 조공이랍시고 주변 사찰을 털어다 성균관에 기부하는 짓을 해마다 하고 물품을 우선적으로 지급 받을 권리를 취하고 있었는데[* 북악산 지리를 거의 꿰게 된 것은 선진들 따라 산행을 다닌 덕이라 자랑한 것, 회유할 때 선진들 운운하는 것 등을 보면 이런 강도짓은 이 자가 처음 시작한 게 그 선진들부터 시작된 악습일 가능성이 크다.] 같이 하자고 효동을 회유한다. 효동 덕에 한 곳 더 알게 되었다고 감사하며 회유하는데, 이에 대해 효동이 발끈하며 따지자, 산에 들어가 세상에 도움도 안 되는 그치들이 양반가 부녀자들에게 복이나 기원하며 공으로 받는 것보다 우리 유생들이 취하는 것이 조선에 이득이라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합리화, 명경암이 효동 또래 여자애 하나와 스님 둘만 사는 작디작은 암자인 걸 알면서도 털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냐며 아랫사람들에게 강도짓을 시켜놨다. 그 말에 효동이 강도짓을 막고 그간 그들이 벌여온 악행을 고발하겠다 말하자 숭유억불을 들먹이며 성균관 유생 및 박사들도 자신 편을 들 것이라 자신하며 융통성 없다고 혀를 찬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을 깨고 열린 재회에서도 공범인 경휼과 차방과 눈빛 교환을 하고는 태연하게 거짓말과 합리화 가득한 궤변을 일삼더니, 자신들은 선진들 따라 했을 뿐인데 한 번만 눈 감아 달라, 선진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다짐으로 이런 짓을 해왔고 그 덕을 봐 성균관 유생들 모두 수 해간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는데 그 벌을 자신들이 다 감당하냐, 벌하려거든 그 선진까지 벌하는 게 옳은데 그분들은 조정에 가신 분들이고 그 중엔 6품까지 오른 어른도 계시다며 장의를 은근히 당당하게 협박한다. 허나 장의의 권한은 진짜로 그들까지 벌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재회를 열기 며칠 전부터 13년 동안의 동재 기부자에 대한 기록을 다 조사해 파악하고 있던 터라 통하지 않았고, 두 장의에게 그간 늘어놓은 궤변이 낱낱이 논박 당해 절망, 그 선진들을 아는대로 다 고하며 살려달라고 빈다. 결국 선진들 이름을 다 분 댓가로 출재는 보류했으나, 이번 출재의 장의를 맡은 오인택과 장민혁이 장의로 있는 한, 동재에서 나가고 그간의 모든 원점 삭제+강의를 듣고 식당에 출석해도 원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자네들 또한 '들통났다'고 형조에게 고해져[* 한마디로 그 부조리를 물려준 선진들에게 그들을 배반한 고발자가 그들이란 게 까발려진단 소리다.] 그쪽에서도 따로 벌을 받고 그간 뜯은 것들을 모두 갚게 되어, 경휼 말마따나 그냥 쫓겨나는 게 나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